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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답사 및 여행

제목

광명시 하안교회(下安敎會)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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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939
내용

 

 


하안교회는 1905년 3월 9일 미국 장로교 파송 선교사였던 언더우드 목사가 당시 밤일마을에 살던 박순석의 가정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후 언더우드 목사가 파견한 전도인 이낙선, 이용석 등의 전도로 김연순, 곽덕원, 서은경, 김성환, 박순석 등이 교회를 설립하고 조사(助師) 홍성서, 김기현, 이춘경 등이 계속 시무하였다.

1916년에는 강도사 차재명을 경기 서편 시흥, 군포 양 지역의 각교회 순행 전도 목사로 세워 예배를 인도하니 개척 교회의 형태를 벗어나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 1918년에는 군예빈[영문 이름: 홈즈] 선교사와 김기현 조사가 활동을 하였다. 김기현 조사는 영등포교회의 장로이기도 하였다. 1921년에는 시흥리교회와 연합하여 1인의 장로를 청원하였으며 1922년에는 첫 당회가 조직되어 당회장에 차재명[조사 정인환], 장로에 김연순이 구성되었다.

1924년 하안리교회의 성찬 참여 교인은 총 23명인데 성찬에는 세례를 받은 교인들만이 참여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 참여 교인은 5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7년에는 차재명 목사가 사임하여 차상진 목사가 부임하였다. 1928년에는 차상진 목사의 사임으로 김현봉 목사를 선임하였다. 1929년에는 김현봉 목사가 사임하고 차재명을 당회장으로, 양동익을 전도사로 청원 시무케 하였다. 1930년에는 광명리교회와 연합하여 장로 1인을 세웠다.

1932년 성찬 참여 교인은 14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924년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교세가 다소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1932년 발행된 『서면향토지』[조사자: 기타야마, 서면공립보통학교 교장]에 기록된 기독교 관련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남아 있다.

“광명리, 하안리, 가학리의 일부에서 수십 년 전부터 교회당을 세우고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 수가 점차 줄어 가학리에는 지금 신도가 전혀 없으며 하안리, 광명리의 일부에만 신자가 있다. 신도 수는 1931년 조사에 의하면 57호였고 예배당은 광명리, 하안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

하안교회는 당시 일제로부터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대와 맞물려 교회도 찬송과 성경을 통해 우리말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심어주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가정예배가 어려워지자 박순석의 사위인 강태현 장로가 925.62㎡를 기증하여 함석으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는 6·25전쟁이 일어나 한국 교회 대부분이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히 하안교회는 군사 요충 지역이 아니어서 오히려 피난민들이 모여 서로 민족의 아픔을 나누며 위로하는 곳이 되었다. 당시 부통령이던 함태영 박사도 출석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교회로 성장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에는 슬레이트로 교회를 재건축하였으며 1960년대에 들어 교인이 300여 명에 이르러 당시 한국 교회에서 손꼽힐 정도로 성장하던 하안교회는 1960년대 말 정부의 그린벨트 정책으로 밤일마을의 개발이 제한되면서 교회 성장 역시 멈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역 사회의 발전에 따라 광명시에 흩어져 살고 있던 교인들을 지역적으로 분류하여 6개 처에 달하는 교회 설립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밤일마을 토박이로 전 광명시장인 이효선 시장의 어머니 김간란 권사 역시 소하동에 독산동교회를 개척하여 지역 사회를 섬기게 되었다.

1995년 19대 목사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담임목사로 있는 이석석 목사는 “교회가 한 번도 이전하지 않고 한 자리에서 100년이 되었다는 것은 교회와 지역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그 의의를 전하고 있다. 2005년에는 하안교회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교회를 짓기 위해 영등포까지 리어카를 끌고 가서 미군부대 철근을 얻어오셨다고 해요.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고 성전을 지으며 일제로부터 받은 설움과 한을 달래신 거지요. 워낙 무속신앙이 깊은 동네여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교인이다 보니 교회일이 마을일이고 마을일이 교회일이 되었지요.” 교회 설립자인 곽덕영의 손자이자 5대째 하안교회를 섬겨온 곽승철 장로는 오랜 세월에 부대낀 할아버지의 교적부를 보며 교회 10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밤일마을’이라고도 불리는 하안1동 산 96-10번지에 위치한 하안교회는 2005년 창립100주년을 맞아 5대째 교회를 섬겨온 설립 교인 후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백주년 장학금 수여와 조촐한 기념 예배를 드렸다. 선교 일백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민족 수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흥과 침체, 성장과 분열을 거듭하며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이제 마을과 교회가 한 몸인 공동체가 되었다.

2010년 하안교회와 밤일마을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밤일마을 재건축 사업이 시행되어 옛 보금자리와 추억이 사라지고, 본래 살던 토박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하안교회의 선교와 사역 활동에 변화의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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